영화 다우트(Doubt)의 원작 희곡의 서문 Books Set You Free.

2008년에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주연했던 영화 <다우트(Doubt)>의 원작 희곡의 서문을 올립니다. 

 

영화 정보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689 여기를 참조하시면 될 듯 합니다. 두 명의 명 배우의 연기가 스크린에서 흘러넘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을 썼던 존 패트릭 샌리가 쓴 글입니다. 약간 종교적인 글일 수 있겠지만, 종교의 필터 없이 보아도 꽤 괜찮은 글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올립니다. 아직 한국에 번역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냥 제가 번역해서 올립니다. 오역이나 잘못 전달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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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당신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쌓아온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연극 안에는 조용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도 말 못할 무언가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정치 토크쇼나, 미디어의 연예 면에서나, 여러 종류의 예술 비평의 측면에서나, 종교적 논의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법정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유명인의 문화 속에 살고 있었지만, 그건 죽어버렸습니다. 현재 우리는 극단적인 옹호이거나, 반대하거나, 판단하거나, 판결을 내버리는 풍토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논의는 토론에 밀려 길을 내주었습니다. 소통은 의견의 다툼이 되어버렸습니다. 공적인 대화는 혐오스럽고 쭉정이만 남았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 대화 깊숙한 곳 우리가 알지만 모르고 있는 어떤 것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질문하나 해 보겠습니다. 논쟁에서 어떤 불편한 지점의 의견을 앞세워본 적 있으신가요?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호해 본 적 있으신가요?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신념을 위해 봉사를 해본 적 있으신가요? 어느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신념이 무너지는듯한 흐릿한 현기증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극본을 쓰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이었어요. 전 극본을 세워나갈 작은 공간을 찾았고, 그 극본은 내 인생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숨어있었었죠. 전 이 제목으로 시작했습니다. 의심.

 

의심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각자는 모두 행성과 같습니다. 거기엔 견고한 지질학적 표면이 있고, 얼핏 영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우리의 현재 모습을 표현할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처럼 수없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 신의 존재를 믿는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여러분의 대답은 여러분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지형이고, 얼핏 영원해 보이지만 그렇게 현혹되어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 대답의 이면에는 또 다른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없는 존재는 그저 즉흥적으로 움직입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형체나 언어도 없이 의식이 길을 터줄 수 밖에 없을 때까지 솟구쳐 올라옵니다. 

 

이것이 (종종 처음에는 나약함으로 경험하게 되어)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의심입니다. 인간이 흔들리거나 불안해지거나 어렵게 얻은 지식이 눈앞에서 증발해버릴 때 인간은 성장의 순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외면적인 자아와 내면이 미묘하고도 난폭하게 조정을 할 때에는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는 실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익숙한 것을 향하는 단순한 감정일 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이 굳어버린 정신을 뚫고 나오는 지질학적인 현상이 일어날 때 펼쳐집니다. 의심은 현재로 다시 들어가는 기회일 뿐입니다.

 

연극. 전 이 이야기를 구상했던 1964년은 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일종의 사춘기를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오래된 방식들은 행동, 옷차림, 도덕관념, 세계관을 지배했고 생기있던 표정은 죽어버린 가면으로 변했습니다. 전 브롱크스의 애덕 수녀원이 운영하는 카톨릭 교회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여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지옥의 존재를 믿고 그들의 남성 상대방을 받들고, 우리를 교육시켰습니다. 우리를 하나로 엮은 신념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하고 꾸는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사회적 계약이라는 거래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믿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제가 느끼기에 당시 그런 학교들에서는 우리는 영원한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인이었고, 우리는 모두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함께 모여 따뜻함과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 결과 우리를 노리려는 누군가에게 어처구니없이 위험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믿음이 나날의 계율이면 약탈자들은 약탈하기 좋은 순간입니다. 그리고 약탈은 벌어졌습니다. 교회의 추문이 드러나 널리 퍼지자, 그 사냥꾼들에게는 좋은 날이 온 겁니다. 그리하여 목자들은 겉모습에 투자했고 위선의 대가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희생했습니다. 

 

전 그 시절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았지만, 그것에서 충분히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전 아직도 함께 공유되는 확신이나, 안전하다는 가정,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다시 확인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지혜로운 사람들이 오랜 기간 단련했던 그 가치의 씁쓸한 필요에 따라 끌려왔습니다. 의심이라는 것이죠.

 

믿음이 무너지었지만 위선은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양심은 흐려졌지만 변화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던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중요하고 현재 진행형인 경험입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의심의 순간입니다. 저의 인간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의심은 신념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신념은 머무는 장소이지만 의심은 무한하여 열정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연극을 보고 확신을 못한 채로 나올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부분에서는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 감정들은 무시하세요. 우리는 불확실을 충분히 탐구하며 살고자 배워왔습니다. 마지막 말이란 없습니다. 우리 시대 말의 잔치 속에는 침묵만이 있습니다. 

 

존 패트릭 샌리

2005년 3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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